빌바오효과(Bilbao Effect)는 상징적인 문화시설로 쇠락한 도시를 살려낸다는 의미로, 스페인의 중공업 중심 중소도시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며 도시를 되살려낸 데서 생겨난 신조어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1970년대까지 철강과 조선 산업으로 유명했던 도시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 산업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쇠락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말에는 주민의 ‘4분의 1’이 실직에 빠질 정도로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게다가 각종 산업시설들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폐부지로 방치돼 도시환경도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1991년 빌바오시는 ‘빌바오 메트로폴리 30(Bilbao Metropoli-30)’이라는 재생추진협회를 구성하고, 마침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해 여러 도시를 물색하고 있던 구겐하임재단에 바스크 지방정부가 부지와 건축비를 모두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한다. 그 이후 세계적인 건축팀 세 곳을 지명해 공모전을 진행했고, 프랭크 게리라는 미국 건축가의 계획안이 당선됐다.
하지만, 재정이 열악했던 빌바오시의 시민들은 1억 달러나 드는 미술관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95% 이상이 반대했다. 빌바오가 이전 같은 공업도시로서 살아남기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여긴 시는 문화산업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주민 설득과 사업 추진을 병행하며 ‘메트로폴리 30’을 구성한 지 6년 만인 1997년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공했다.
주민들의 걱정과 달리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독특한 디자인으로 개관 첫 해에만 100만명이 찾는 성과를 올렸고, 3년 만에 건설비용을 회수하고, 5년 만에 세금을 포함한 모든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에 고무된 빌바오시는 그 이후 다양한 공공건축물과 거리디자인에 더욱 힘을 쏟았고, 각종 기반시설과 다양한 문화시설 재투자라는 선순환을 계속해 지금은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부한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랜드마크의 함정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랜드마크는 경계표(境界標), 마루지라는 뜻으로 원래 여행자 등이 특정 지역을 돌아다니던 중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게 표식을 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뜻이 더 넓어져 상징물이나 조형물 등이 어떤 곳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것을 부르는 말이 됐다.
상징물이 크기와 직접적으로 연관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그 규모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물의 규모는 자연스레 거대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빌바오효과는 종종 거대 개발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독특한 디자인의 랜드마크로 쇠락하던 도시가 되살아났다는 논리의 전개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빌바오효과는 단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의해 시작되고, 완성 됐을까? 답을 내기 전에 우리가 겪었던 비슷한 프로젝트를 떠올려보기로 하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며 시작한 랜드마크 프로젝트였다. 2006년 공원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07년 국내외 유명 건축가 8인을 지명해 진행한 공모전에서 고(故) 자하 하디드의 안을 선정하고, 수많은 논란 끝에 2014년 정식으로 개관했다. 자하 하디드라는 건축가는 프랭크 게리 못지않은 독특한 디자인 건축을 하는 건축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빌바오 구겐하임 못지않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구현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동대문 지역과 서울을 상징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마치 동대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로젝트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주변 상황도 빌바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바라보기에 충분했다고 보면, 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15년여의 차이를 두고 비교하기 적당한 재료들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가지고 봐도 3년 만에 1억 달러가 넘는 건설비용을 회수했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개관한 지 2년째이지만 건설비용 약 5000억원을 얼마만큼이나 회수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어 보인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효과라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로 도시재생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물리적인 공간 조성에만 치중한 채 랜드마크의 역할을 고민하지 않고 진행한 거대 건축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로써 ‘DDP 교훈’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릇에 어떤 물을 담을 것인가?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은 독특한 건축 외에도 1930년대부터 미술관을 운영해온 구겐하임재단의 운영 노하우와 재단 설립자의 미술품 사랑에 기인한 좋은 작품들의 전시 등과 어우러진 결과이다. 그렇지만 이를 빌바오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빌바오시의 다각적인 노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좋은 디자인의 다양한 공공건축물, 수질 개선을 바탕으로 한 수변 공간 개발, 대중교통체계 개편, 관광객이 아닌 시민을 위한 계획, 단발적이고 지엽적인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한 도시 전체의 종합적인 계획에 의한 실천, 축제 등으로 지역과 미술관의 연계 프로그램 개발 등이 빌바오시의 노력이다. 어쩌면 물리적 공간인 미술관 자체보다는 이런 기반시설들과 프로그램 등에 쏟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빌바오시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도구로 시 전체를 리모델링하는데 성공한 반면,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대문과 그 일대의 리모델링에 완벽하게 실패한 프로젝트가 됐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운영적자를 모면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 등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패션 산업의 메카인 주변지역은 이전만 못한 명성으로 빠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동대문의 패션 산업에서 뗄 수 없는 관계의 봉제 산업 밀집지역인 인근의 창신ㆍ숭인동지역 재생프로젝트는 따로 움직이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에 동대문을 패션과 디자인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시작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계획은 내용 없는, 그냥 그런 독특한 건물을 하나 더 추가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와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공공건축물과 공공시설 등에서 수준 높은 디자인을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처럼 멋진 그릇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담을 물을 고민하지 않아, 찬장에만 있는 전시용 그릇처럼 사용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이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반영된 멋진 그릇에 대한 욕구가 임계에 다다랐다면, 앞으로는 멋진 그릇에 걸맞은 좋은 물을 담고 싶다는 욕구도 만족시킬 수 있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에 의한 ‘진짜’ 문화산업의 성공으로 빌바오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