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즈음이었다. 남구 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유진수 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도화2ㆍ3동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놀이터를 만들려고 준비 중인데, 주민들과 함께 놀이터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해주실 수 있나요?” 당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건축교실을 진행하고 있던 터라 특별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물론이죠. 커리큘럼을 한번 짜보겠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 나서 통화내용을 곱씹어 보던 중 문득 ‘어! 놀이터?’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기억 속의 놀이터는 초등학교 이전의 것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미끄럼틀ㆍ그네ㆍ철봉ㆍ정글짐 등, 조악한 놀이기구 몇 개가 놀이터라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지고 노는 ‘기구’는 있지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놀이터 워크숍을 한 후에 지나치는 놀이터를 유심히 보았고, 지금도 옛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예전부터 있던 미끄럼틀ㆍ그네ㆍ철봉 등의 놀이기구가 훨씬 복잡하고 재미있게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1980년대의 놀이터에도, 2016년의 놀이터에도 공간은 없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놀이는 인간이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즐겁다면 그 무언가는 모두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놀이를 사회학자나 인류학자는 인간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는 특징으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왜 놀이(유희)를 즐기는지, 다양한 연구와 가설로 인간이 유희를 하는 이유를 대략 몇 가지로 정리했다. 그것들이 바로 잉여정력설ㆍ생활준비설ㆍ반복설ㆍ휴양설ㆍ생물학설이다.
잉여정력설은 말 그대로 먹고 사는 활동을 하고 남은 힘을 쓰기 위해 놀이를 한다는 것이고, 생활준비설은 일상생활에서 반복하는 준비활동을 조금 더 즐겁게 하기 위해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반복설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활동을 좀 더 쉽고 즐겁게 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것이고, 생물학설은 놀이를 하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설이다. 왜 놀이를 하게 됐는가에 대한 설은 다양하지만, 공통되는 점 한 가지는 바로 놀이의 핵심이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이후로 인간의 특징을 기초로 해 정의한 수많은 ‘호모~’시리즈가 있다. 그 중에 2010년께 갑작스레 우리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책이 바로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어가 1938년에 쓴 ‘호모 루덴스’다. ‘호모 루덴스’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라는 점에서 파악하는 인간관으로 단순한 놀이를 넘어 정신적 창조활동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창조활동이 인류사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보는 견해다.
요한 하위징어가 정리한 ‘놀이의 특징’
▲ 순천 ‘1호 기적의 놀이터 얼뚱발뚱’.
요한 하위징어는 놀이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놀이는 자발적 행위다. 놀이에 의무나 강제적 명령이 부여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일상 혹은 실제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다. 놀이는 일상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놀이가 만들어낸 고유의 세계로 들어가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놀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놀이는 일단 시작하면 어느 순간 종료해야하며,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활동이므로 독립된 공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놀이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개미처럼 일을 해야만 하고, 베짱이처럼 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도구적 인간(호모 파베르)’의 관점에서 교육받고 자랐던 우리에게 ‘유희적 인간(호모 루덴스)’은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우리에게 열심히 놀아야할 당위성을 부여해준 고마운 학자다.
이처럼 놀이가 인류의 문명 발달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다면, 그 놀이를 하는 공간도 중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나 풍부한 상상력과 다양한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위한 공간에서 경험은 입체적 사고의 출발점이 아닐까?
놀이와 공간
▲ 순천 ‘1호 기적의 놀이터 얼뚱발뚱’.
지난 5월 7일 순천에서 ‘1호 기적의 놀이터’라는 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3000㎡ 규모의 이 놀이터는 지난해 7월 순천지역 초등학생 1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두 차례의 ‘기적의 놀이터 참여 시범학교와 디자인 캠프’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놀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놀이기구 없이 자연물들(바위ㆍ통나무ㆍ흙ㆍ물 등)과 지형 등을 이용해 공간적 다양성을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놀이터를 주로 이용하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워크숍 등을 통해 나온 결과라고 하니, 어른들이 얼마만큼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있었는지 반성해야하지 않을까.
놀이터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집 밖에서 노는 첫 번째 공간이다. 그곳에서의 공간적 경험이 다양한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놀이터에서 공간적 즐거움과 새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하는 이유다.
예전에는 놀이터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대부분 작은 마당이라도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기에 집안의 다양한 공간이 놀이터가 되기에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마당ㆍ(반)지하 창고ㆍ다락 등, 오르락내리락하는 공간적 풍부함과 각 공간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물건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장난감이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은 구석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하고, 올라갈 수 있는 곳들은 죄다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다 떨어져 다치기도 하지만, 다쳐서 잃는 것보다 공간적 경험으로 얻는 것이 훨씬 많다. 이런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요즘 아이들은 실내놀이터에서 하고 있으니, 다칠 염려 없이 풍부한 경험을 하는 것에 오히려 좋아해야하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서울에서는 몇 해 전부터 놀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롭게 정비하는 놀이터는 놀이기구로만 구성된 놀이터가 아니라 공간적으로 풍부한 놀이터를 구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과 결과물이 순천에서 나왔다. 각종 사회적 지표 등에서 최하위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인천도 이런 ‘기적의 놀이터’로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도시가 되면, 떠나려는 도시가 아닌 머물고 싶은 고장이 되지 않을까?
그동안 놀이터라는 공간에 대해 무지했던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모여 고민하고 즐겁게 놀면서 하나씩 만들어가다 보면, 인천이 아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그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이런 구호로 이 글을 맺는다. ‘놀이터에서 놀 사람 여기 붙어라’
[출 처]
시사인천 _ 놀이터에 공간을 허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