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0.02.26
-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 제1회스페인건축캠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MACBA)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
완공: 1995년
바르셀로나 도시확장 과정에서 소외되고 밀려난 이민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살던 라발지구. El Raval 이라 불리던 이곳은 과거 바르셀로나를 감쌌던 성벽 바깥에 위치한 지역으로 교회와 정원, 병원들이 밀집되었던 곳이다. 중세시대 바르셀로나 성벽이 확장되면서 비로소 성벽 안으로 편입되었지만, 1859년 일데폰스 세르다의 바르셀로나 마스터플랜에서 제외되고 19세기 산업화 이후 급격히 도시가 성장하자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수많은 이민자와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결국 도시는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성장한 부르주아들이 머물던 신도시 지역과 노동자 및 이민자들이 머물던 구도심으로 양분되었고 이를 대표하던 지역이 바로 El Raval이었던 것이다.
△ 세르다의 마스터플랜과 옛 라발지구 (좌측 하단 짙은 검은색)
△ 번화가인 람블라스 거리(좌)와 라발지구(우)의 대비된 모습
그러나 라발지구의 높고 좁은 골목은 채광을 제한했으며, 주거시설 바로 옆으로는 연기를 내뿜는 각종 공장들이 밀집해 전염병이 창궐하고 크고작은 범죄가 발생하는 등 주거환경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비록 바르셀로나의 산업을 지탱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지만 낙후된 건물과 좁고 어두운 골목, 각종 범죄 등으로 인해 라발지구는 관광객 조차 기피하는 우범지역으로 낙인되었고 바로 옆 바르셀로나 최고의 번화가인 람블라스 거리와 대비되는 풍경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까딸루냐 정부는 1985년 라발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시가지 재생 특별계획을 시행하여 재개발에 착수했다. 그 내용으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사회시설 정비
둘째, 공공공간의 창출 및 오픈스페이스 확대
셋째, 문화의 도입
특히 까딸루냐 지방정부는 음지였던 라발지구를 개발하기 위해 빛의 건축가이자 백색의 건축가라 불리는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 Richard Meier에게 전시와 공연, 세미나 등이 복합된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설계를 의뢰하였다. 그렇게 1995년 개관한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전체 공사비 380억원이 소요된 미술관은 지하1층, 지상3층의 전시동을 포함하여 7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120m 길이의 거대하고 하얀 매스와 빛의 아트리움 그리고 전면 천사의 광장은 과거 수도사들이 살았던 라발지구의 촘촘한 도시구조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의도적인 충돌을 통한 과거와 현재, 전통과 예술의 화합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아트리움은 전시실을 연결하는 경사진입로(램프)와 넓은 유리스크린을 통해 전면광장을 조망하고 관람객의 움직임이 외부로 투사되면서 공간에 활기를 주고, 커튼월에 반사된 라발지구는 전통과 현대의 조합을 상징한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이 개방성을 갖기를 원했고, 옛 것과 새 것,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기를 바랬다."
△ 좁은 라발지구 내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아트리움
빛이 강할수록 어둠은 짙어진다.
하지만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살던 라발지구는 지역주민에 의한 문화소비가 담보되지 않았으며, 값비싼 현대미술관 입장료는 이들에게 박탈감과 문화적 단절을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이곳에 강제로 이식된 빛은 이들에게 그 자체로 폭력이었던 것이다. 빛으로 가득찬 순백의 아트리움은 그것을 감싼 거대한 커튼월을 통해 내외부의 적극적인 소통과 연결보다는 그저 관망의 자세로 마치 병원의 수술실과 같은 청결함을 이들에게 강요하는 듯하다. 결국 문화소외와 외부자본에 의한 임대료 상승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주민들로 인해 오늘날 라발지구에서는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촉발되고 있었다.
이들에게 티끌없는 백색의 건축은 음지를 밝히는 빛이 아닌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었던 것이다.
△ 라발지구 골목에서 바라본 미술관
△ 미술관 옆 주택 벽면에 붙은 현수막들
ENS FOTEN FORA DE CASA
"그들이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다."
△ 천사의 광장에 모인 스케이트보더들
관람객보다는 목적 없이 떠도는 이민자들과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전면 천사의 광장. 건축캠프 참가자들조차 대낮에도 쉬이 미술관에 접근하거나 사진을 찍기가 어려운 이곳에서 우리는 진정 주민들이 원했던 공간은 무엇이며, 건축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을 나눠본다.
건축물의 건축적 가치와 의도가 무엇이었든 일단 도시조식의 일부가 된 공간은 주민 및 지역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전시품보다 주목받는 건축물. 그리고 건축물의 개별적 평가와 별개로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미술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축캠프 일반인 참가자의 말에서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건축가와 떠나는 여행 건축캠프
건축과 도시,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건축가와 함께 떠나는 이야기가 있는 건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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