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9.05.09
- [동경] 외부계단
- 재미나요 │ 바깥나라
동네 거리 풍경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깥에서 2층이나 3층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이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메구로에서 에비수로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
작은 아파트의 모서리에 2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계단이 보입니다.
대부분의 발코니들은 실내 공간으로 편입되지 않은 채로, 옥외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것이 거리 풍경, 도시 경관에 끼치는 영향이 큽니다. 건물과 거리 사이의 경계가 두툼해지고, 상호 작용의 개연성은 높아집니다. 도시가 도시다워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길이 입체가 되어 건물로 이어지는 옥외 계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카메구로. 늘어선 벚나무로 유명한 그 강변에 있던 건물입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모습입니다. 본체와 사이를 둬 가벽을 세우고, 가벽 안쪽에 길에서부터 이어지는 외부 계단을 두르는 것은, 9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 몇몇 젊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학생들도 곧잘 따라 하던 수법입니다.
안도 타다오로 대표되는 건축가들이 7,80년대부터 하던 작업인데,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 사진 이후로는 하라주쿠 뒷골목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노출 콘크리트로 면 요소를 만들고 그것들을 접거나 교차하는 식으로 조형 유희를 벌이는 것 또한 오래전 한창 유행했던 것으로, 조형적인 완성도에 앞서 입체적인 상호 작용을 막는다는 점에서 그다지 상황에 맞는 디자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계단은 만듦새나 상황을 놓고 보면, 뒤늦게 추가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2층을 지나 3층까지 연결되는 모습으로 이 정도가 되면 저 계단은 건물의 일부라기보다는 길에 속하는 공공의 공간이 되어, 그야말로 정말로 ‘길의 연장’이 됩니다. 움직임은 겹쳐지고 밀도는 높아지고, 시선은 입체로 엇갈리게 되어 상호작용의 개연성, 해프닝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때마침 계단의 정점에서 검은 옷 입은 사람이 길을 내려보고 있네요. 무슨 말이라도 걸어올 것 같습니다.
이 건물은 가장 큰 디자인 특징이었던 발코니의 일부를 허물어서 외부 계단과 발코니를 겸한 외부 복도로 만들었습니다. 조용했던 동네가 활성화되고 집이었던 곳이 하나둘씩 가게로 바뀌면서 없었던 외부 계단을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2층을 지나 3층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길이 수직으로 연장될 때의 물리적, 또는 심리적 한계는 3층 정도인가 봅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의 2층이나 3층쯤의 외부 공간에 사람들이 서 있는 것으로, 길 전체의 풍경이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외부 계단이 의도대로 활성화되느냐의 여부는 심리적, 물리적 한계로서의 높이라는 요인과 계단으로 이어지는 곳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계단과 접하는 건물의 마감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대한 요인도 있겠지요. 건물 안의 상황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에 일부는 문을 겸해서 활짝 열리는 식이라면 길에 직접 접하는 1층과 다를 바가 없겠고, 그만큼 외부 계단이 성공할 가능성도 커질 것입니다. 계단이나 난간의 디자인도 깔끔하고 딱 떨어지게 만드는 것보다는 애초의 의도가 아니었음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도록, ‘만만해 보이게’, 뭔가 빈틈이 있는 것처럼 ‘덜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 눈길도 끌고 사람 발길도 끌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임기 응변식으로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든 외부 계단인 것 같습니다. 유인하고자 하는 흐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곡선이 되었네요.
역시 사람들을 유인하고자 계단 주변의 마감을 시원한 통유리로 만들어서, 안의 상황이 잘 보이게 했습니다.
계단 부근의 마감을 폐쇄적으로 연출하면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쉽게 올라가기에 만만치 않은 뭔가 비밀스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외부 계단과 계단 난간이 건물 디자인을 지배하게 된 경우입니다.
넓은 발코니랑 결합되니 한층 여유로운 구성이 되네요.
건축가 천경환
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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