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7.03.04
- 현대판 토템폴, 숭례문 (2/2)
- Modern Totem Pole, Sungnyemun
[건축비평]
현대판 토템폴, 숭례문 (2/2)
Modern Totem Pole, Sungnyemun
인간을 이루는 부분
숭례문 화재 때 사람들은 슬퍼했다. 그것이 집단 심리의 발현이든, 현대인의 허영적인 슬픔이든, 한국인이 모두 한마음으로 모여 한소리를 낸 것은 2002년 월드컵 이후로 거의 처음이었다. 네티즌들은 앞다투어 애도의 글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방송매체들은 숭례문이 무엇인지, 화재로 무엇을 잃었는지 등의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비록 슬프고 비극적인 사건이 원인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는 슬픔이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인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슬픔은 그저 나쁜 것이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마냥 화재현장을 가리고 급하게 복원을 지시하고 서둘러 공사를 진행했다. 더욱 놀랄 일은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도 왜 자신의 슬픔이 존중받지 못하는지 알려 하지 않았다.
9·11 테러의 현장, 미국 월드트레이드 센터의 자리에 현재는‘911 메모리얼 파크’라는 추모 공원이 운영되고 있다.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 피터 워커는 사고 용지의 비어있는 중심부를 이용한 설계안을 제안했고, 그 제안이 당선되었다. 쌍둥이 건물이 있던 자리는 깊게 파여 사각형의 폭포가 떨어지는 연못이 되었고, 폭포 뒤의 석판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맞은편에는 나무를 심어, 동시에 시민 공원의 역할까지 계획하였다.
또한, 공원 조경에 사용된 500그루의 나무는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5개 지역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추모의 무게를 더했다. 그렇게 건축가와 희생자 가족들의 끊임없는 대화로 탄생한 911 메모리얼 파크는 우리의 슬픔은 나쁘거나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흘린 눈물만큼 존중받아 마땅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숭례문 복원에는 인간성에 대한 존중이 빠져 있다.
숭례문의 복원을 결정한 이들에겐 타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고, 복원을 당연히 받아들인 시민들에겐 자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정말 슬픔은 없어지고, 사라져야만 하는 것일까?
왜 슬픔은 우리의 감정 일부로써, 우리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으로써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참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슬픔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는 부도덕하고 부당한 것이 되어버렸다. 부정확하고 실체가 없는, 우리 모두를 울리는 사람의 감정보다는 또렷하고 만질 수 있는, 복원된 숭례문이 정의이고 참이 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세상의 일면이다.
토템
화재 후, 숭례문 화재현장에서는 굿판이 펼쳐지고 추모행렬은 끊이지 않아 하나의 커다란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다. 화재 이전에는 그냥 존재했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숭례문이 화재를 통해 국민적 통합을 이루게 하는 문화적 토템이 되었다. 숭례문의 600년 역사 중에서도 그 정도로 가치와 상징성을 가진 적은 600년 전 완공 당시를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야 숭례문은 진정한 서울의 랜드마크로써 나아갈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숭례문의 잔해를 폐기물 처리장에 버리면서 나타난 시민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국상을 맞은 우리가 국보의 흙 한 줌이라도 쓰레기처럼 버리면 안 된다.’라고 외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유해를 그냥 버리나.’라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다.
숭례문 화재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숭례문이 갖고 있던 기호를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호들이 쌓이면서 문화적 발전을 이끌어 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문화가 인간의 총체적 행위를 의미한다고 했을 때, 숭례문에 쌓인 사회적 기호라는 연료는 기존의 정체된 문화의 대기권을 뚫고 날아갈 만큼 충분했다.
하지만 숭례문의 복원은 문화가 발전할 가능성을 깡그리 지워버리고 모든 시간의 시점을 화재 이전으로 돌려버렸다. 이런 식으로라면 우리의 문화는 영원히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할 뿐이다. 문화의 고저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래도 굳이 판단하고자 할 때는 그 문화 내에서 모든 인간이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한 공리적 판단을 결정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의견이다.
숭례문을 복원하는 것과 불탄 흔적을 통해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시민을 위한 것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슬픔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성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 문화는 슬픔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문화보다 저급의 문화이다. 우리는 문화를 좋아하고 문화를 맹신한다. 그러면서도 문화를 존중할 줄은 모른다.
문화콘텐츠들은 너무 쉽게 나타났다가 너무 쉽게 사라진다. 그 안에서 문화가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는 길인지, 등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잘 팔리고 예쁜 것만이 우리 문화인 줄 안다. 숭례문 복원은 그러한 논의와 존중이 부족했을 때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숭례문이 떠난다면
1398년, 태조 7년에 완공 이후로 숭례문은 크고 작은 전쟁과 재해를 겪으며 한 번의 재건과 네 번의 개건, 그리고 수차례의 자잘한 수리를 거쳤다. 시간의 무게가 지반을 가라앉히고, 왜왕의 명령에 성곽이 사라지고, 교통의 발달에 문의 기능을 잃고, 전쟁과 불길 속에 여러 차례 형태를 잃었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숭례문을 다시 살려냈다.
토대와 경계가 허물어지고 기능과 형태를 잃었음에도 숭례문은 우리 곁을 떠나지 못했다. 완공된 지금에야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숭례문이 불타던 그 날 숭례문을 그만 보내줬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한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숭례문이 또 화재를 당한다면, 이전만큼 슬퍼할 수 있겠습니까?’ 대다수 사람은 허무하긴 해도 이전만큼 강한 감정을 느끼진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숭례문은 대체 가능한‘물건’이 되어 버렸다. ‘국보 1호’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증언하고, 현재를 대표하며, 미래를 같이 할 수 있어야‘국보 1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복원된 숭례문이 600년 역사를 증언하고, 우리를 대표하며, 먼 미래에도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쉬이 생각되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사회를 슬픔에 빠뜨리고 싶은 테러리스트라면,
복원된 숭례문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겠는가?”
건축가 Sung Jin kim
글쓰는 아니 글도 쓰고 싶은 건축가.
한동안 건축기자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으나 지금은 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도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건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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