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집

건축주는 30 중반의 젊은 부부로서 단독주택의 삶을 먼저 체험한 뒤 집을 지으려고 서울 외곽의 단독주택에서 전세로 살고 있었다. 집을 지을 땅을 알아보려고 여러 곳을 찾다가 우연히 벼룩시장에 매물로 나온 땅을 발견하였는데, 공인중개사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땅주인과 직거래로 토지를 매수하였다고 한다. 사실 벼룩시장에 올라온 매물들이 허위 매물인지 아닌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을 입금한 뒤에 불현듯 중개 사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지만, 다행히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들려주었다.

이 땅은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이어서 몇 가지 건축규제가 있었기 때문에 설계하는 동안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확정된 계획안을 담보하기 곤란하였다. 이유는 허가권자의 해석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경우와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한 PLAN A, B, C 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건축주 또한 사전에 많은 공부가 있었던 것 같았다. 게임 엔진을 개발하는 외국계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남편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향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컴퓨터의 3D 프로그램 툴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공간을 그려놓은 과정들을 보여주었다. 보통 이런 경우 건축주가 전달하는 내용의 너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집중하게 되면 땅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힘들고, 설계자 또한 한 곳에 매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성과 취지만을 남겨두고 이 모두를 해체하여 다시 공간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 다이어그램 (건물 형태 구성 과정)

대지는 막다른 도로 끝에 위치해 있으며, 지구단위계획 지침상 도로에 접한 부분에서 건축한계선을 3미터 이격한 뒤 건축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지를 차지하는 건축면적이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북측 폐교 부지가 개발제한구역으로, 건축이 금지된 공지와 보행자의 통행이 가능한 현황도로가 있었기 때문에 경사지의 지형을 고려한 반지하층과 주택의 진입레벨을 유리하게 계획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북일조에 의한 건축물의 높이제한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건축면적에도 불구하고 층수를 높여 원하는 독립된 층별 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땅의 형태는 빗변이 긴 직각삼각형에 형태를 하고 있어서 예각의 꼭짓점 부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특히 땅의 형태를 감안하여 최대한 실내의 데드스페이스를 최소화하고 공간의 위계에 따른 실의 배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  막다른 도로, 삼각형 형태의 대지에 자리잡은 집

△ 진입로 쪽으로는 오롯이 주차장과 반지하층의 출입구만 위치한다.

△  좁은 골목의 현황도로를 사용하여 높은 지반에 따로 둔 1층 현관 (주택 출입구)

이 집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택의 진입 및 현관의 위치였다. 효율적인 공간구성을 위해 도로로 사용되는 진입로 쪽으로는 오롯이 주차장과 반지하층의 출입구만을 두고, 폐교 부지였던 좁은 골목의 현황도로를 사용하여 높은 지반에 주택의 출입구를 따로 두었다. 반지하층의 출입구와 반층 정도 올라온 주택의 바닥 레벨은 주택의 1층에서 자연스럽게 내부의 스킵된 공간을 만들게 되었고, 모든 층에 스킵플로어를 동일하게 적용하였다. 이는 벽을 사용하지 않아도 공간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되었다. 

△ 단면 다이어그램

△ 현관에서 바라본 작업실

△ 작업실에서 바라본 현관쪽 모습

△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단차를 활용한 작업실 공간

△ 작업실

△ 작업실

가족 구성원이 오롯이 부부만으로 한정되어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경우 주택의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일반적인 단독주택과는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한다. 젊은 부부에게 집이 가지는 의미는 주거공간뿐만 아니라 작업공간이기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따라서 작은 면적에 층으로 구분된 공간들을 동선을 고려하여 인접하여야 할 공간과 분리되어야 할 공간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계획을 시작하였다.

두 분의 요구사항을 정리해보면 아내는 단독주택이지만 작은 공방을 만들어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를 원하고, 외국계 IT 회사에 근무 중인 남편의 경우 재택근무를 고려한 작업실을 필요로 하였다. 또한 손님들이 방문하였을 때 프라이버시가 확보될 수 있는 거실 공간의 위치도 중요했다. 

△ 2층 주방&식당

△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쪽 모습

△ 스킵플로어로 구성된 내부공간

△ 2층 거실

△ 내부계단

△ 내부계단에서 바라본 거실쪽 모습

건축주는 땅이 작기 때문에 벽의 두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목구조 또는 경량 스틸의 중단열을 고려한 집을 예상하였는데, 진입도로의 레벨차를 극복하기 위한 내부의 단차라던가 내부의 공간을 구획하는 벽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구조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철근콘크리트 벽식구조를 선택하게 되었다. 

△ 3층 욕실과 화장실

△ 3층 욕실

△ 욕실에서 바라본 침실쪽 모습 

△ 반층 올라가면 나오는 침실

△ 3층 침실

△ 침실에서 바라본 드레스룸쪽 모습

△ 침실

△ 3층 테라스

△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 다락

△ 다락

△ 옥상 테라스

△ 반지하층 근린생활시설

△ 계단을 따라 만든 긴 창

쓸모없게 생긴 땅으로 보여 그저 지역주민의 밭으로 사용되던 곳에 이런 집이 지어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더욱이 인근에는 오래된 구옥과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고, 이 집을 끝으로 더 이상 건축이 확장되지 않는 막다른 위치에서 이 집은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다.

입주 후에 방문하였을 때 설계자인 내가 건축주께 부럽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되돌아온 답변이 독특하다. ‘저도 제가 부러워요...’라는 말이 내게 들려주는 최고의 감사 인사 같았다. 집이 둘 만의 공간으로 가득 채워지길 원했던 부부는 건축설계를 의뢰하기 오래전부터 직접 그려보았던 자신들의 공간보다 더 풍부해진 집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다.

덧붙여 남편의 성은 ‘고’씨이고 아내의 이름 중에 ‘경’자가 들어가는데, 이 부부는 서로 한 자씩 부른다. ‘고~!’, ‘갱~!’
그래서 집 이름이 ‘고갱집’이 되었다.

① 근린생활시설  ② 주차장  ③ 화장실

① 작업실1  ② 작업실2  ③ 화장실

① 주방&식당  ② 거실  ③ 다용도실

① 침실  ② 드레스룸  ③ 욕실  ④ 화장실

① 다락  ② 옥상 테라스

① 주차장  ② 작업실2  ③ 거실  ④ 침실  ⑤ 다락

① 근린생활시설  ② 화장실  ③ 주차장  ④ 작업실1  ⑤ 작업실2  ⑥ 다용도실  ⑦ 주방  ⑧ 거실  ⑨ 욕실  ⑩ 드레스룸  ⑪ 침실  ⑫ 옥상 테라스

① 근린생활시설  ② 화장실  ③ 작업실1  ④ 거실  ⑤ 주방&식당  ⑥ 욕실  ⑦ 옥상 테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