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천경환
- 설립
- 2011년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150-5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 연락처
- 02-525-0429
- 이메일
- lazybirdc@naver.com
세종시 단독주택
#1. 디자인
매체에 실린 나비지붕집이 마음에 들어 찾아오신 건축주를 위해 세종시에 치열한 직장생활을 하고 계신 맞벌이 젊은 부부와 세 명의 아직 어린아이들,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아갈 집을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대지는 세종시 단독주택 필지로, 경계를 알아볼 수 없는 벌판에 자리한 어느 땅으로 작은 찻길 건너 커다란 유치원을 마주하며. 조금 멀리 얕은 산이 있고. 아주 멀리로는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무수히 많은 아파트들이 보입니다.
길 건너 유치원에게 다정하고 자랑스러운 이웃이 되고 싶고.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에게는 단독주택만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마을의 탄생을 알리는 집의 등장이 될 터이니, 뒤이어 들어설 이웃집들에게는 본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므로 또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느낍니다.
건축주에게 필요한 공간 목록과 공간 조직, 꿈꾸는 생활상, 개인적인 취향, 꾸려나가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 설정. 사소하고 소박한 취향. 집에 관련되어 떠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두서 없이 편하게 써달라 부탁드렸습니다. 느슨한 수필과 단편소설, 그리고 상품 주문서의 성격이 뒤섞인 글이지만, 가장 유력한 길잡이가 될 글이니, 밑줄 그어가며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습니다.
땅에 집을 어떻게 앉힐 것인지부터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네모 반듯하게 차곡차곡 늘어선 땅에, 만들어야 하는 면적을 채우면서, 길에서 떨어진 아늑한 마당, 자동차 두 대가 여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주차장 등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배치 대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곱 가지 배치 대안에서 압축된 두 가지 대안. 그 두 가지 중에서 권해드리고 싶은 한 가지의 대안으로, 건축가의 선택은 우여곡절을 거쳐 이미 정해졌습니다. 크고 작은 도면으로 출력해서 찢고 오리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설명드렸더니 건축주께서 어렵지 않게 동의해주셨습니다.
권해드린 배치 대안에는 간략한 평면 계획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까만 선. 그 선들이 의미하는 공간은 실제로는 얼마나 넓고 긴 느낌인지, 스케일 감각을 공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낌없이 커다랗게 출력해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움직임의 흐름, 시선이 지나가는 길, 가구가 놓일만한 가능성 등을 두서 없이 알록달록한 색연필로 마구 그어가며 설명드렸습니다. 의뢰인도 다른 색깔의 색연필로 대응합니다. 예전에 정림건축학교에서 써먹었던 스케일 인형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진행될 설계 일정표를 보여드렸습니다. 설계 과정은 의뢰인도 건축가도 아직 모르는 어딘가로 함께 떠나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그 속에서 일정표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배치 대안과 간략 평면이 정해졌으니, 첫 만남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공감이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다듬어진 평면계획과 더불어 외장재의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너무 실무적(?)으로만 진행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조금 느슨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빠듯한 일정이기에 진행속도가 중요하지만, 그럴수록 빠뜨리기 쉬운 핵심 가치를 거듭거듭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만남. 두꺼운 선으로 그렸던 벽에 실제 두께가 표현되고 평면과 더불어 입체 상황을 설명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나비지붕집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취도 있었지만, 실행 과정에서의 착오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구축의 측면에서나, 형식의 측면에서나, 조형으로나, 조금 더 개념에 충실하고, 그래서 더 발전된 나비지붕집을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의뢰인도 나비지붕집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찾아오셨으니, 충분히 해 볼 만한 일입니다.
△ 나비지붕이라는 형식 속에서, 최대한 편견을 버리고 여러 대안들을 만들었습니다.
공간의 배치 상황, 겉으로 보이는 조형, 빗물 처리 등의 조건들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선택된 것은 가장 균형 잡히고, 가장 규칙적인 패턴을 보이는 대안이었습니다.
나비지붕 조형 탐구와 더불어, 벽 두께와 창호, 그리고 수납가구가 표현된 평면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평면은 평면대로 계속 다듬어집니다. 모형으로 표현하기 아직은 애매한 것들은 컴퓨터 모델링으로 보여드립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 그리고 평면의 상세한 내용. 결국 ‘창문 이야기’입니다. 창문 하나하나의 모양, 위치, 여닫는 방식을 말씀드리며, 그 이유를 설명드렸습니다. 수정을 위한 ‘빨간펜’을 준비했습니다. 원하시는 내용을 모형 위에 주저하지 마시고 그려달라 했습니다만,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달리하실 말씀이 없다 하셨습니다.
협의가 끝나 의뢰인은 떠나시고 혼자 남아서. 선택된 지붕 대안을 얼른 만들어 큰 모형에 올려보았습니다.
1/30 스케일의 큰 모형이다 보니, 실내 풍경 찍기에 좋네요. 1층 가족실. 천정은 높게. 창문은 낮게.
나비지붕의 효과는 길게 뻗은 복도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계단실 겸 가족실로 이어지는 2층. 고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의 효과와 접힌 지붕의 조형 효과가 선례가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상상이 됩니다.
3D 모델링
△ 1층
△ 2층
△ 지붕을 올리기 전, 지붕과 2층 벽면 상단 사이에 고창(clerestory)를 끼웁니다.
△ 차양, 루버, 선홈통 같은 요소들도 중요합니다.
△ 그 위에 지붕을 올립니다.
지난 원주 나비지붕집에서는 각형강관으로 뼈대를 삼았었는데, 이번은 중목구조를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구조층과 단열층을 겹칠 수 있어 지붕 두께를 대폭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접히는 지붕 단면 형상에 맞추어 부재 단면을 가공할 수 있으니, 실내 천정 마감 면을 만들기에도 조금은 편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주 나비지붕집에서는, 아무래도 처음 시도하는 형식이다 보니, 시공과정에서나 사용이나 관리 면에서 교훈으로 삼을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원주 나비지붕집의 스타일을 한층 고도화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하늘에서 모형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올망졸망하게 접힌 면 들이었는데, 눈높이에서는 사뭇 다른 인상이 느껴집니다. 어떤 시점에서는 원근감 덕분에 지붕의 방향성, 운동성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의도는 아니었는데, 마치 조각난 지붕 용마루들이 일직선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진입하는 도로에서 보면, 역시 의도는 아니었는데, 지붕이 한 방향으로 솟구치는 것처럼 보입니다.